일상잡담/자유칼럼

집단 감성인가? 집단 지성인가?

카리스χάρης 2024. 4. 25. 00:05

 
 
자연스러운 상태의 인격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신이 이해한 현상에 대해 호의적이다. 
 
우리는 이해하고 알게된 느낌은 우리에게 강렬하며 분명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행복감이나 감동 깨달음의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느낌의 진실함이 내가 인지한 현상도 진실할 것이라고 동일시 해 버린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나와 다른게 현상을 이해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한 현상이 나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 때는
나에게 어떤 느낌도 형성하지 못한다. 
그 모호한 느낌은 불편한 느낌이고
이미 그 현상과 대비되는 이해에 대해서 나는
진심으로 좋은 마음으로 
믿음과 호의를 형성하였다. 
 
나의 진실된 믿음이 말해주는 그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을 
그 현상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렇게 상반되는 이해를 만났을 때
우리는 두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나와 동조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 감성이 형성되면,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
힘이 있는 사람이나 명성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속한 집단에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나에게 더 친절하면
나는 내가 가진 이해에 대해서 
확실히 진실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충성심도 강해진다. 
 
 
두번째는 
불편한 감정과 상태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나선다. 
다양한 진실과 자료들을 종합하여
나의 이성과 논리에 기반해 진리를 탐구한다. 
나의 이성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들의 견해도 들어본다. 
그리고 그 전문가들의 논증이 타당한 근거를 거치며 진행되는 것인지
믿음의 강요인지도 면밀히 따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진리가 
비록 소수 집단에 의해서만 선택되었더라도
 
그 진리를 위해 
위험하고 불편한 자리를 감수할 용기를 내본다. 
 
 
 
나약한 인격, 게으른 인격, 오만한 인격은
내가 속한 집단의 감성을 집단의 지성으로 둔갑 시킨다.
생각하기 복잡하고 귀찮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판단을 따르기로 한다. 
그가 가진 명성과 외모 말투가 좋다. 
그가 나에게 드러내는 친절은 
그를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나는 그렇게 나의 진리에 대한 민감성과 판단력을 집단의 판단과 감성에 맡겨 버린다. 
 
소속감이 나에게 위안이고 보금자리이다. 
 
나에게 진리는 나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다. 
 
진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쯤은 
나의 오락이자 승리감이 되기까지 한다. 
때로는 영웅심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집단이 
그런 나를 예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만하고 나약한 인격이여... 
좋은 사람이기 위해 성실하게 애쓰는 자여.
어리석은 방향을 향하면 나도 모르게 악인이 되어버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