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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의 동기 정전제(井田制)는 사회주의 사상인가?

고려말 권문세족이 소유한 땅은 비대해지고, 정작 세금을 내야하는 백성들의 땅은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세금이 제대로 충당되지 않으니 나라는 나라대로 힘들고, 백성은 백성대로 힘든 상황이 되었다.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정몽주를 포함한 신진사대부들은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게 된다. 중국 고대서 《맹자(孟子)》, 《주례(周禮)》, 《춘추(春秋)》 를 따라 정전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정전제는 토지를 국유화해서 백성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는 제도인데, 이때 땅을 우물정(井)’자모양으로 9등분한 후 8 구획은 8가구에게 나누어주고, 가운데 부분은 공동 경작하여 국가에 조세로 바치도록 하는 제도이다.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 준다는 점 때문에 이 제도는 현대의 공산주의·사회주의와 표면적..

대한민국의 이름은 어떤 의미야?

‘대한민국’은 갑자기 새로 만든 이름이 아니라, 고종 때의 ‘대한’을 이어받으면서 ‘제국’을 ‘민국’으로 바꾼 이름이다. ‘대한’은 어디서 왔나?‘한(韓)’은 삼한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삼한은 원래 마한·진한·변한을 가리켰지만, 시간이 흐르며 우리 땅 전체를 이르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고려 때에는 삼국 전체를 ‘삼한’이라 부르기도 했다. 1897년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으로 바꾸고 황제국을 선포했다. 조선 왕조가 쓰던 ‘조선’ 대신 ‘대한’을 택함으로써, 나라의 독립성과 삼한을 아우르는 역사적 정통성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당시 논리에서는 고려가 삼한을 통합했고, 조선이 그 계승자라는 역사 인식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는 그렇게 정해진다. 민국은 어떻게 정해졌나?1910년 대..

미터법을 거부하고 아직도 '인치-야드'등의 옛 도량형을 쓰는 나라는?

현재 전 세계 영토의 95% 이상, 사실상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처럼 '미터법(SI 국제표준단위)'을 공식 표준 도량형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온 지구가 하나의 단위를 쓰며 완벽하게 통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탄생한 미터법이 유일하다.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국가 표준으로 전면 의무화하지 않고, 인치·피트·파운드 계열(야드파운드법 혹은 미국 관습 단위계)을 고수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딱 세 나라뿐이다. (1) 미국 (United States): 미국 역시 1975년에 미터법 전환법을 제정하긴 했으나 이를 '자율'에 맡겼고, 막대한 산업 인프라 교체 비용과 시민들의 익숙함 때문에 전환에 실패했다. 그 결과 과학과 의학 분야를 제외한 일상(마일, 갤런, 파운드, 화씨 ..

조선 시대 조세를 위한 넓이 측정법 결부법

고려시대는 귀족들이 소유한 토지로부터는 세금을 걷지 않았는데, 말기가 되면서 권문세족들이 엄청난 크기의 토지를 소유 독점하게 되면서, 국가의 재정은 파탄이 나고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비참한 상황이었다.소수가 엄청난 사유재산을 갖게 되면서 많은 민중이 고통 받는 것도 문제였고, 이것이 야기하는 갈등과 불신, 혼란도 문제였고, 나라 살림을 할 재정의 부족, 국방 및 외교적 문제 등 많은 국가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조준, 정도전과 같은 신진사대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고대의 정전제(井田制)를 이상으로 보았다.정전제는 토지를 우물정자 모양으로(가로, 세로 3등분하여 9등분)로 나눈 후 8명에게 각 영역을 분배하고 가운데 영역은 국가에 내놓는 세금으로 두는 제도였다.이..

도량형과 권력 견제

유럽의 역사적 맥락과 조선의 정치 체제를 비교하면 '권력과 견제 시스템'에서 차이를 보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은 양날의 검이었으며, 핵심은 "그 권력을 통제할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가"였다. 프랑스 혁명 전 유럽의 봉건제와 조선의 중앙집권제를 도량형과 권력 견제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1. 유럽 봉건제: 백성을 보호할 '왕의 자'가 없었던 시대프랑스 혁명(1789년) 전까지 유럽은 왕권이 지방 영주들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분권형 사회였다.수천 개의 고무줄 자: 영주들은 자기 영지 안에서 법이자 왕이었으므로, 도량형도 영주 마음대로 정했다. 일례로 프랑스 한 나라 안에서만 무려 25만 개가 넘는 서로 다른 도량형 단위가 난립했다.대물림되는 수탈..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12율명과 서양 12음계 비교

동아시아 전통 음악의 12음계를 '12율명(律名)'이라고 부르며, 서양 음악의 12반음 체계에 대응시킬 수 있다. 전체 12음계의 명칭과 서양 음정(C, D, E...) 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국악의 12율명과 서양 음계 매칭 (C 음 기준) 보통 국악(아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황종(黃鐘)을 서양 음악의 '다(C)' 음으로 잡으면 다음과 같이 대응시킬 수 있다.국립국악원의 현대 표준 지정 및 역사적 복원 연구에 따른 실제 주파수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소리를 비교할 수 있다. 주파수 숫자를 보면 서양의 도와 아악의 황종이 절대 같은 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서양 음은 A4=440Hz(평균율) 기준이며, 국악 음은 삼분손익법(순정률 계열)에 의한 국립국악원 표준 조율 주파수를 따른다.(황대..

황종척은 길이, 넓이, 부피와 어떻게 관련될까?

황종척(길이)은 단순히 길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넓이(결부법), 부피(양), 무게(형)까지 온 세상의 모든 단위를 한 줄로 꿰어내는 조선 시대 '단위 체계의 절대 기준점'이었다.조선 시대의 자로 넓이, 부피, 무게를 어떻게 엮었는지 그 유기적인 연결 구조를 알아보기로 하자. 1. 넓이 (양전제와 결부법)세종은 영토를 측량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해 토지의 넓이를 재기 위해 주척(周尺)을 사용하였다. 이 주척은 본래 주나라에서 유래한 척인데, 조선은 이 주척을 황종척을 기준으로 0.6배(60%) 길이로 정의하였다. 토지의 넓이는 주척을 사용하여 설명된다.6척은 1보(步)인데, 이를 바탕으로 토지의 면적인 '파 (把 / 주먹 파)' 가 정의 되고, 10파는 1속 (束 / 묶을 속) , 10속은 1부 (負..

왜 황종척은 34.48cm여야 했을까?

황종척은 음악, 길이, 무게, 부피 등 통치의 중요한 정체성이자 기준이 되는 자이다. 세종이 고구려척(약 35.6cm)과 비슷한 길이(약 34.48cm)임에도 불구하고 황종척(黃鐘尺)을 새로 제정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음악과 도량형의 일치(율도량형, 律度量衡)'라는 동아시아의 통치 이상을 조선만의 고유한 표준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황종관은 구리(놋쇠,황동)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음률의 기준으로 역시 황종척과 연결된다. 이것은 황종척에서 1척을 잘라내고 9척의 길이를 갖는 원통형 관이다. 왜 황종척의 길이는 34.48cm가 되었을까? 왜 고려척을 그래도 사용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실용적인 자(尺)를 만드는 것을 넘어,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자 했던 세종의 철학이 담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아시..

주몽은 나라를 세울 때(BC37년) 왜 '조선'이 아닌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했을까?

주몽의 고려(고구려)가 처음 나라를 세울 때(기원전 37년) 고조선(조선)의 국호를 쓰지 않고 '고려'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선택한 것은 매우 현실적인 정치·지리적 이유와 당시의 천하관 때문이었습니다.고려(고구려)가 조선을 잇는 정통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핵심 이유는 무엇일까요?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리적 위치와 부족의 출발점이 달랐습니다고조선의 중심지는 마지막 시기(위만조선)에 대동강 유역(평양 일대)과 만주 요령 지방에 걸쳐 있었습니다. 반면 고구려가 처음 일어난 곳은 압록강 지류인 독로강·혼강 유역(지금의 졸본, 집안 일대)이었습니다.이 지역은 고조선의 핵심 영역이라기보다는 고조선 주변의 독립적인 변방 부족(예맥계 정착민)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주몽과 그를 따른 세력은 이 지역..

왕건은 왜 고대 조선을 잇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고 고려라는 국호를 선택했을까? 중국의 주장대로 이것이 중국의 역사이기 때문일까?

우리의 역사에는 세개의 고려가 있습니다. 주몽의 고려, 궁예의 고려, 왕건의 고려. 후대에 정리해서 부르길 각각 고구려, 후고구려, 고려로 언급되고 있지요. 왕건의 고려 왕조는 주몽 고려(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며 1011년에 동명왕(주몽)의 사당에 훈호를 더해주는 등 고려의 시조인 주몽을 국가의 시조로 숭배하고 인식을 일체화했습니다. >> 고려는 왜 고대 조선을 잇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려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은 것은 중국의 역사적 주장(동북공정 등)과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당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과 지배층에게는 '조선'보다 '고구려(고려)'를 계승하는 것이 국가 생존과 권력 정당성 확보에 훨씬 더 절실하고 유리했기 때문입니다.그 구체적인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