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일본인과 조선인(한국인) 거주자 비율 및 피해자 비율로 나눠서 비교해 보자.
아래 수치는 일본 정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한국 연구자들의 교차 자료를 기반으로 한 추정치이다.
1. 히로시마 원폭 피해 (1945년 8월 6일)
| 구분 | 당시 거주자 수(추정) | 사망자(1945년 말까지) | 피해 비율 |
| 일본인 | 약 34만 명 | 약 12만 명 | 약 35% |
| 조선인 | 약 4만~5만 명 | 약 2만 명 | 약 40~50% |
| 전체 | 약 39만 명 | 약 14만 명 | 약 36% |
히로시마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군수공장 등 대규모 산업시설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수의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징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때문에 주요 시설 근처에 숙소들이 있었고, 원폭은 이들 시설 무력화를 목적으로 투하되었기에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박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인 주거지는 폭심지에 상대적으로 가까워 피해 비율이 일본인보다 더 높았다.
2. 나가사키 원폭 피해 (1945년 8월 9일)
| 구분 | 당시 거주자 수(추정) | 사망자(1945년 말까지) | 피해 비율 |
| 일본인 | 약 20만 명 | 약 6만5천 명 | 약 32~33% |
| 조선인 | 약 2만 명 | 약 1만 명 | 약 50% |
| 전체 | 약 22만 명 | 약 7만5천 명 | 약 34% |
나가사키도 마찬가지다. 역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미쓰비시 조선소와 탄광 등에 많았고, 조선인 거주지는 공장과 가까워 폭심지 반경 안쪽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사망률이 특히 높았다.
3. 핵심 비교
| 구분 | 히로시마 | 나가사키 |
| 조선인 거주 비율 | 약 10~12% | 약 9~10% |
| 조선인 피해 비율 | 전체 사망자의 약 14% | 전체 사망자의 약 13% |
| 조선인 거주자 대비 사망률 | 약 40~50% | 약 50% 이상 |
| 일본인 거주자 대비 사망률 | 약 35% | 약 32% |
4. 의미
- 거주 비율과 비교했을 때 조선인 피해 비율이 일본인보다 높았던 이유는 강제징용 조선인들이 군수공장 인근에 집중 거주했기 때문이다.
- 원폭으로 사망한 조선인 수는 히로시마 약 2만 명, 나가사키 약 1만 명으로 총 약 3만 명으로 추산된다.
- 부상자, 피폭 후유증 사망자, 원폭 피해 현장을 청소하고 수습하는 데 동원되어 이후 피해를 입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조선인 피해자 수는 꽤 높아진다.
5. 2차 피해
2차 피해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조선인의 피해는 더 심각했다. 이후 수습 작업, 방사능 노출, 차별적 대우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 '직접 피해'보다 더 큰 '2차 피해'
원폭 피해는 단순히 당시 사망자 집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조선인들은 추가적이고 장기적인 피해를 입게되었다.
- 생존한 조선인들 다수가 시신 수습, 건물 철거, 방사능 잔해 청소에 강제로 투입되었으며, 보호장비 없이 작업했기 때문에 2차 피폭이 심각했고,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난다. 히로시마에서 원폭 직후 생존 조선인들이 2~3만으로 추정되는데, 피해 수습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도 2만여명이었으며,상당수는 수개월 내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결국 히로시마에 거주했던 거의 대부분의 조선인이 피폭 직후 혹은 수습 기간동안 2차 피폭 등으로 피해를 입게되었다.
--- 치료 및 지원에서의 차별
또한 치료 및 지원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일본인 피해자는 일정한 보상과 치료를 받았지만, 조선인 피해자는 법적 보호 대상에서 배제된다. 귀향한 조선인들도 조국으로부터 “방사능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전후 보상 체계가 없었기 때문.
--- 사회적 낙인과 트라우마
원폭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조선인 피폭자들은 일본에서 이중차별을 겪는다. “조센징”이라는 민족차별에 더해 “히바쿠샤”라는 피폭자 낙인까지 이들의 삶을 힘들게 하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원폭 후유증 환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의료 지원도 부족했다.
6. 피해 규모 재평가
2차 피해까지 포함하면 실질 피해는 더 컸다.
| 구분 | 원폭 직후 조선인 피해(추정) | 2차 피해 포함 시 추정 |
| 히로시마 | 사망 2만~2만5천 명 | 후유증 포함 최대 3만 명 이상 |
| 나가사키 | 사망 약 1만 명 | 후유증 포함 최대 1만5천 명 이상 |
| 전체 | 사망 약 3만 명 이상 | 장기 피해 포함 시 4만 명 이상 |
일본 정부의 공식 집계는 훨씬 낮지만, 최근 연구와 구술사에 따르면 최소 4만 명 이상이 원폭으로 직간접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 조선인 시선에서 본 원폭의 의미
세계사에서 원폭투하는 역사적 기록이 되었고, 일본은 세계대전 주축국으로써의 이미지를 오히려 피해자의 이미지로 전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피해자의 범주에서조차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일본에 강제징용되어 고생하던 중 원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이다.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본인들만 원폭 피해자로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 조차 당시 별이된 많은 조선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쟁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 피해자"라는 이중적 상황에서 고생하신 분들이자, 원폭 피해자, 그리고 피폭 후 수습 과정에 동원되어 재차 피해, 그리고 생존자가 없으니 목소리가 사라졌으니 아무도 들여다 보지 못했다. 일부는 지금까지도 한일 간 외교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들을 향한 금전적 보상 및 의료지원등은 가장 값싼 보상이다. 생존자에 한해서 그들이 생존해 있는 기간에만 행해지는 위로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기억하는 공간과 행사가 요구된다.
- 자료 제공 및 정리와 관련하여 ChatGPT의 도움을 받음.
'일상잡담 > 자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상평통보의 읽는 방향은 왜 북남동서인가? (1) | 2025.08.27 |
|---|---|
| Why does Japan still honor their WW criminal ancester? (0) | 2025.08.27 |
| 서명펜 외교 to 트럼프 (6) | 2025.08.26 |
| 1검찰이 띠지를 분실한 이유 (2) | 2025.08.26 |
| 승리와 패배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 이쁘다 (1) | 202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