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오크쇼트는 평생 케임브리지와 런던정경대에서 연구하며 교수의 삶을 살았다.
주변사람들에게 위트 있는 쪽지와 정성 어린 선물을 보내는 다정한 사람이었으며, 유머 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에서 대화를 강조한 만큼, 실제로도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답을 강요하는 것을 혐오했으며, 그에게 삶과 교육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모험이었다.
그는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며, 조용히 자신의 사유를 정립하는 데 더 가치를 두었다. 그는 보수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질서를 수호하려는 완고함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낭만적 보수주의자였다.
'경험의 양상'은 그의 핵심 철학이다.
마이클 오크쇼트(Michael Oakeshott)의 ‘경험의 양상(Modes of Experience)’은 그의 저서《경험과 그 양상(Experience and Its Modes)(1933)에서 정립되었다. 그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단일하지 않으며, 특정한 전제와 관점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고 보았다.
1. 경험의 통합성과 ‘양상’의 의미
오크쇼트에게 경험이란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합된 전체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거대한 경험의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정한 제한적인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을 그는 ‘양상(Mode)’이라고 불렀다.
각 양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틀’이자 ‘언어’이며, 저마다의 논리와 타당성을 가진다.
2. 세상을 이해하는 경험의 네 가지 양상(Mode of Experience)
오크쇼트는 경험의 양상을 구분했는데, 초기(1933년)에는 학술적 정의의 성격이 강했다. 이때는 실천, 과학, 역사의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했으며, 철학적 논증의 엄밀함을 강조했다. 후기(1950)에는 예술을 추가하여 '대화'라는 은유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강조하였다.
네 가지 양상은 다음과 같다.
- 역사(History): 과거를 '과거 그 자체'로서 이해하려는 양상. 현재의 목적이나 실용적 이익을 배제하고,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와 맥락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한다.[맥락적 재구성].
- 과학(Science): 세상을 ‘측정 가능한 양’과 ‘일반적인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양상이다. 개별적인 현상보다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일반화, 수량화].
- 실천(Practice):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는 양상이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 보며, 도덕, 정치, 경제적 행위를 통해 가치를 실현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태도이다.[도덕, 정치, 경제].
- 시(Poetry/Art): 세상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와 목소리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오크쇼트는 이를 ‘이미지들의 유희’라고 표현하며, 실용적 목적이 없는 순수한 향유를 강조했다.[미적 향유].
3. ‘범주 오류(Category Error)’에 대한 경계
오크쇼트 철학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양상 간의 혼동을 경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실을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려 하거나, 예술을 정치적(실천적) 도구로만 보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뒤섞는 오류와 같다. 그는 각 양상이 서로 독립적이며, 한 양상이 다른 양상을 지배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4. 세가지 소통 모드 (Modes of Language/Relation)
오크샷은 관계를 맺는 세 가지 소통 모드를 식별하며, 각각은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나타냈다.
실용적인(Practical) 모드: 실용적인 경험 모드에서는 개인이 실용적인 활동과 실용적인 목표 추구에 관심을 갖는다. 대상을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태도를 반영한다. 실용적인 모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행동, 문제 해결 및 기술 적용과 관련이 있다.
체험 모드(Informational/Fact): 경험 모드는 반드시 실용적인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도 자신을 위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포함한다. 세상을 객관적 정보로써 대하며 사실 확인이나 지식 습득에 초점을 맞춘다.
시적 모드(Poetic): 시적 모드는 상상력과 창의적인 참여로 특징지어진다. 이 모드에서 개인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경험을 창조하고 형성한다. 대상을 수단이 아닌 그자체로 즐기는 태도로써, 오크쇼트가 가장 높에 평가한 이미지들의 유희가 일어나는 상태이다.
5. ‘인류의 대화’로서의 교육
오크샷의 경험의 양상은 개인이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양상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개인은 주어진 시점에 맥락이나 특정 관심사에 따라 그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
오크쇼트는 교육과 삶을 이 다양한 양상들이 어우러지는 ‘대화(Conversation)’로 보았다.
"대화 속에서 각 양상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며, 다른 목소리와 부딪히거나 조화를 이루며 인류의 문명을 형성한다."
그에게 있어 성숙한 인간이란 어느 한 양상(예: 실용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과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양상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그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는 ‘소통의 양식’을 그 자체로 딱딱하게 분류했다기보다는, ‘대화(Conversation)’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Modality)으로 보았다.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를 크게 ‘도구적 소통’과 ‘비도구적 소통’으로 나누어 설명하곤 했는데, ‘실용, 체험, 사적’이라는 키워드는 그의 후기 사상인《인간의 행위(On Human Conduct)》에서 다루는 사회적 유대(Societas vs Universitas) 개념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목적 중심 소통은 실용적 모드로써 특정 목표(이익 창출, 문제 해결, 과업 완수)를 위해 소통한다. 효율성이 최우선이며, 상대방은 나의 목적을 도와줄 수단이나 파트너가 된다. 관계중심 소통(Civil Association, 사회적 결사)은 특별한 목적없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며 맺어지며, 이 관계를 시민적 결사(Societas)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소통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서로가 대화의 에티켓을 지키며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규범적 틀 안에서의 자유라는 성격을 갖지만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서로의 고유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방식이어야 하며, 이것이 오크쇼트가 생각한 이상적인 대화의 모습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모든 소통을 '실용 모드(문제 해결)'로만 환원하려는 것을 경계했다. 과학적 사실이나 실용적 이득에만 매몰되면, 인간 삶의 풍요로운 '체험'과 '사적인 유대'가 사라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용을 넘어 시적/사적 유대로 확장되는 과정이 오크쇼트가 꿈꿨던 대화이다.
오크쇼트에게 소통이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정보 전달을 넘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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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akeshott, M. J. (1933). Experience and its Modes. Рипол Классик.
[2] Oakeshott, M. (1960). The voice of poetry in the conversation of mankind. Les Etudes Philosophiques, 15(1).
[3] Oakeshott, M. (1991). On human conduct. Oxford University Press
[4] Oakeshott, M. (1977). Rationalism in politics and other e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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