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 벤야민의 용어로 플라뇌르(Flâneur)는 그의 사유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상이다.
'한가롭게 거닐다' 혹은 '산책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flâner'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도시산책자 플라뇌르는 도시 문명의 관찰자이자 기록자를 상징한다.
플라뇌르는 19세기 파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독특한 유형의 인물을 말한다. 플라뇌르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자유를 가진 계층에서 나왔다. 유산계급(Brourgeoisie)의 한량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귀족적 전통이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부상하던 시기에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도시를 배회하던 이들이었다. 돈을 버는 노동에 뛰어들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산채자'들이었다. 산업 혁명 이후 등장한 중산층 중에서, 도시의 화려함과 자극을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들이 플라뇌르의 주축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플라뇌르를 탄생시킨 물리적 토대이자 사회적 공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철골과 유리로 지붕을 덮은 파리의 아케이드였다. 이곳은 비바람을 막아주어 사계절 내내 산책이 가능하게 했다. 이곳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플라뇌르를 구매하지 않으면서도 이 장소가 갖는 어떤 느낌에 대한 시각적 소비를 할 수 있었다. 벤야민은 아케이드를 플라뇌르의 '거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공적인 거리 공간이지만 플라뇌르에게 사적 휴식공간과 다를바 없는 공간처럼 느꼈졌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독특한 행동양식을 보이기도 했다. 거북이를 산책과 댄디즘이다. 거북이를 산책시키며 느리게 걷기는 기계화된 산업 사회의 빠른 속도를 거부하고 나는 내 속도로 세상을 관찰하겠다는 미적 선언이라 볼 수 있으며, 자신들의 옷차림과 태도에 극도로 신경을 쓰며 자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현상이었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그들과 섞이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플라뇌르라는 사회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19세기 중반이후 파리가 현대적으로 재개발(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사업) 되면서 이들의 설자리가 변한다. 아케이드가 쇠퇴하고 백화점이 등장했으며, 관찰자였던 플라뇌르는 쇼위도 앞에서 소비자로 흡수된다. 거리가 넓어지면서 마차가 다니던 길이 자동차 도로가 되면서 느긋한 산책은 불가능해졌다. 벤야민은 이 과정을 보며 플라뇌르가 상품의 화신이나 군중 속의 낙오자로 변해가는 것을 슬퍼했다.
벤야민이 분석한 플라뇌르는 자본주의의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공허함을 직시했던 유일한 집단이었다.
벤야민이 이 모호하고 게으른 집단에게서 철학적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이유는, 그들이 남긴 결과물이 전통적 기록과는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플라뇌르가 남긴 것은 논문이나 보고서등은 아니었으며 '도시의 파편(Fragments)'에 대한 기술과 그것에 대한 이미지 였다. 이들은 랜드마크나 화려한 명승지가 아니라, 도시의 뒷골목에 관심을 가졌다. 버려진 쓰레기, 낡은 간판, 군중 속에 섞인 부랑자, 매춘부, 노동자들의 뒷모습등을 관찰했다. 이들의 관찰은 주로 시, 에세이, 신문 연재글로 남았다. 대표적 사례가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받은 충격을 짧은 이미지로 기록했는데, 벤야민은 이 파편적인 기록들이 오히려 거대 서사가 놓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산책의 과정에 자신을 전시했지만, 벤야민은 이 전시를 인정욕구를 넘어선 불안의 발로라고 분석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현실에서 인간조차 팔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플라뇌르는 나 또한 이 도시에서 팔리고 있는 하나의 상품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슬픈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이들은 도시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러는 순간 자신도 생산과 소비의 톱니바퀴속에 물린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스템 밖에 있으면서도 시스템을 접촉하며 시스템의 균열을 바라보며 불안을 느끼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이들이 소외된 계층을 위해 따스한 시선을 던졌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이들은 그들에게 냉철한 동질감을 느낀다. 즉, 연민이 아닌 공모관계(Complicity)를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플라뇌르가 부랑자, 매춘부, 낙오자들을 관찰했던 것은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들을 관찰하면서 자신도 그들과 다름 없음을, 자신도 '사회적 불용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는 불안의 심리에 더 가깝다. 잉여들의 유대... 산업 사회에서 모든 인간이 '부품'으로 전락한다.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플라뇌르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은 똑같이 '쓸모없는 존재'들이었다. 벤야민은 플라뇌르가 소외된 이들을 보는 시선을 '상품이 상품을 알아보는 시선'이라고 했다. 이들이 소외된 계층을 위해 행동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와 동류의 인간들이다. 플라뇌르는 가난과 소외를 미적 소재로 삼았고, 비참한 현실조차도 하나의 풍경이나 알레고리로 치환하여 관찰하였다. 이 지점이 플라뇌르가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벤야민이 주목한 지점이다. 비참한 현실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벤야민은 그들의 미적 관찰이 세상이 이토록 망가져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렬하게 폭로한다고 보았다.
플라뇌르는 자본주의에 휩쓸리는 대중이 되길 거부했다. 그러나 군중속에 있고 싶어했으며 그 속에서 끝까지 나를 유지하려 했다. 그들이 남긴 시들을 보면, 소외된 이들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처한 현대적 고독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그 무심하고 건조한 기록이 오히려 후대의 우리에게 당시 사회의 균열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 셈이다.
벤야민이 정리한 플라뇌르가 수행한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도시 산책자가 아니었으며, 역사와 사회를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했다.
1) 근대성의 해독가 : 벤야민은 플라뇌르를 통해 자본주의가 낳은 환상을 분석했다. 플라뇌르는 화려한 상품과 쇼윈도 뒤에 숨겨진 도시의 물신 숭배적 성격과 소외를 포착하는 눈을 가진 인물이며, 이들은 도시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내며 근대성의 모순을 발견한다.
2) 기억의 수집가와 알레고리 : 플라뇌르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버려진 물건, 오래된 건물, 잊혀진 장소들에 주목한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역사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린 파편들을 수집하려 했다. 플라뇌르가 수집한 이 파편들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변증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재료가 된다 .
3) 보들레르와의 연결 : 벤야민은 샤를 보들레르를 전형적인 플라뇌르로 보았다. 보들레르처럼 도시의 충격과 군중의 고독을 시적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은 플라뇌르적 기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벤야민에게 플라뇌르를 현대 예술가가 가져야 할 '비판적 거리두기'의 전형이었다.
4)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애도 : 벤야민은 도시가 점점 가속화되고 상업화됨에 따라 플라뇌르가 설 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산책로는 도로가 되었고, 아케이드는 백화점이 되었다. 플라뇌르는 소비자로 전락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 소멸의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의 파괴적 속성을 비판한다.
|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에서 플라뇌르(산책자)의 시선과 현대적 우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는 시는 단연 <통과하는 여인에게(À une passante)>이다. 통과하는 여인에게 (À une passante) : 이 시는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파리의 거리에서 화자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한 여인을 보고 느끼는 찰나의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다. 시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거리의 소음이 귀를 멍하게 하던 중, 한 여인이 지나간다. 화자는 그녀의 눈에서 폭풍이 치는 듯한 매혹과 죽음과도 같은 슬픔을 동시에 발견한다.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그 짧은 순간, 화자는 그녀와 영혼의 교감을 느꼈다고 확신하지만, 여인은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화자는 외친다. "오, 내가 사랑했을 당신, 오, 그것을 알고 있었을 당신!" 당시 독자들에게 이 시가 충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전통적 사랑'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찰나의 미이다. 과거의 서사시나 연가(戀歌)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사랑을 노래했다면, 보들레르는 단 몇 초 만에 일어난 스침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는 근대 도시의 속도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혁명적인 시도였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고요한 방 안이 아니라, "귀를 먹먹하게 하는 길거리의 함성" 속에서 미적 경험을 찾았다는 점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군중 속의 고독'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연한 만남에 대한 환상'을 건드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실을 예감함으로써 일종의 쾌적감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여인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확실한 상실이 그 사랑을 영원하고 완벽하게 만는다. 이러한 탐미적이고 다소 퇴폐적인 감수성은 당시 관습적인 도덕관에 지친 지식인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며 큰 해방감을 주었다. 이 시의 화자가 바로 플라뇌르이다. 그는 군중 속에 섞여 있지만, 동시에 그 군중을 미적으로 관찰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플라뇌르는 타인과 '참여'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고도, 그 '관조'만으로도 강렬한 실존적 경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플라뇌르의 '자기 전시적 측면'과 '비실천적 태도'도 이 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자는 여인에게 말을 걸지도, 그녀를 돕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를 하나의 '미적 충격'으로 소비하고 시로 남길 뿐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바로 이 "도저히 관계 맺을 수 없는 타인과의 찰나적 교감"이야말로 현대 도시 문명이 낳은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이라고 보았다. |
벤야민의 미적 인간은?
플라뇌르는 벤야민이 지향한 미적 인간상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벤야민이 생각한 미적 인간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세상을 읽어내고 그 이면을 폭로하는 비판적 미적 주체에 가깝다.
전통적인 미적 인간이 예술 작품 앞에서 작품을 관조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플라뇌르는 도시라는 거대 텍스트를 읽어내는 존재이다. 그는 상점의 간판, 군중의 표정, 건물의 배치를 하나의 기호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미적 감각이 감상을 넘어 지적인 인식의 도구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
벤야민은 효율성과 속도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저항하는 태도로서 플라뇌르의 게으름을 높게 평가했다. 거북이를 목줄에 매어 산책시키는 행위는 속도가 돈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보폭을 유지하겠다는 미적 저항으로 해석했다. 그에게 미적 인간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주체적으로 감각하는 인간이다.
또한 이들은 도시의 파편을 통해 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진실 수집가이다. 이들은 골목길의 쓰레기나 낡은 파편에 눈길을 돌리는데, 이것은 벤야민에게 도시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행위였다. 이들은 시대의 진실을 발견하는 알레고리적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군중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군중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회의 충격적 모습 속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그 충격을 미적 경험으로 변환하려하는 인간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벤야민의 미적 인간은 정치적 주체이다. 그에게 미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과 자본이 만든 환상(Phantasmagoria)을 꿰뚫어 보고, 그 속에서 억압된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행위다.
따라서 플라뇌르는 벤야민이 꿈꾼 '세상을 감각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구조를 전복하려는 지적 예술가'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뇌르는 벤야민에게 '안과 밖이 뒤섞인 존재'였다. 군중 속에 있으나 혼자이며, 상품을 즐기지만 그 이면의 허무를 알고 있다. 벤야민은 바로 이 플라뇌르적 시선을 빌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파편화된 근대 문명의 진실을 폭로하고자 했다.
'제삼취미 > 교육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Walter Benjamin's understanding of skill and art (0) | 2026.05.02 |
|---|---|
| Model-Eliciting Activities (MEAs) (0) | 2026.05.01 |
| 예술은 유토피아의 선취(先取)이다.(Ernst Bloch) (0) | 2026.05.01 |
| 가다머의 미적경험 (0) | 2026.04.29 |
| 도구의 이해과정에서 기존의 언어질서에 편입하지 못하면 수행이 떨어진다 (0) | 2026.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