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뢰벨은 '인간의 교육(Die Menchenerziehung)'에서
놀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놀이는 아동 발달 즉 아동기 인간 발달의 최고 단계이다. 왜냐하면 놀이는 내면의 내적 필요와 욕구로부터 나오는 내면적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이 단계에 속한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정신적인 활동인 동시에 인간 삶 전체의 전형이다. 따라서 놀이는 인간에게 즐거움, 자유, 만족, 내적 외적 편안함, 세상과의 평과를 준다 (Fröbel, 1826).
놀이는 본성적으로 타고난 활동 충동의 현상으로써 아동들은 이러한 내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놀이 활동을 통해 진정한 내적 만족감을 얻을수 있다(Fröbel, 1826).
우리는 아이들의 이 자연스러운 본성이 어린이들의 삶에서 갖는 의미에 주목해야한다. 프뢰벨의 이러한 관점은 유치원의 설립과 은물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프뢰벨은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즉 모든 존재 내부에는 신성이 작용하며 이것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교육 목적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의 발현에 두었다.
"교육은 사유하는 지능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내면 법칙인 신성을 순수하게 발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며 그것의 방법과 수단을 가르치는 것이다(Fröel, 1826)."
그의 교육사상을 그의 생애사 및 그가 살았던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것으로 볼수는 없기에, 그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근느 튀링겐에서 태어났으며, 한살이 되기도 전에 엄마를 잃는다. 외삼촌 밑에서 자란 그는 측량사, 건축가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으며, 1806년부터 1811까지는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이 기간동안 페스탈로치 교육기관에 머물렀는데 이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게된다.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괴팅겐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했는데, 이 시기에 실러, 피히테등의 강의를 접하면서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816년 그는 자신의 첫 교육기관을 튀링겐의 그리스하임에 세웠으며, 페스탈로치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의 학교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1829년 이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1831년 마이닝겐 근처에서 새로 세운 학교마저 실패로 끝나게 되면서 그는 스위스로 떠나게 됐다. 스위스의 브류크돌프 고아원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도 그의 학교 개념을 실천에 옮겼으며, 1836년 다시 튀링겐으로 돌아와 유아교육기관을 설립한다(Heiland, 2007). 이것이 유치원의 시초이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던 1789년은 그의 유년기였으며, 이후 급변하는 유럽의 정세는 유럽 지성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는 후기 계몽주의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혁명을 거쳐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괴테시대, 헤겔 이후의 단계까지를 거치는 시대를 살았다.
낭만주의는 교육분야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으며, 삶의 개념에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인간은 피동적 존재가 아니고, 능동적이고 자율적 존재라는 자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낭만주의자들은 개성과 인간성이 통일된 존재로서의 완전한 인간을 기를 방법을 고민했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교육에 대해 관심을 두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인간을 바라보던 이러한 접근은 프뢰벨의 교육 사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며, 그의 교육 사상은 대표적인 낭만주의 교육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대표적인 낭만주의 사상가들로는 칸트, 루소, 피히테, 페스탈로치, 실러, 어언트(Arndt) 등이 있었다.
프뢰벨의 교육사상에서 놀이는 교육 목적의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동기의 놀이는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발달시켜간다.
그는 인간의 발달 단계는 연속선상에서 파악하지 않고,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등으로 분리하여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명확한 구분과 엄격한 제한은 인간이 자신의 발달에 대해 일찍,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키우지 못함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기 관찰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과 제한은 인류의 발전과 진보에 형언할 수 없는 해악, 혼란, 방해를 가져올 수 있다(Fröbel, 1826)."
전인 교육은 이른시기부터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놀이야말로 이 과정을 위해 필수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그의 교육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놀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유치원이라는 장소는 아이들이 만족감, 순수함, 신뢰, 활동에 대한 동기 및 작업 충동등을 돌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Kinder(어린이)garten(정원)이라는 단어도 식물을 돌보는 정원사처럼 아이들을 그들의 개성에 맞게 돌보는 장소로써의 교육기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제시된다.
프뢰벨은 유치원과 더불어 아동의 체계적인 놀이활동을 위헤 0~6세를 위해 놀이체계를 개발한다. 이 체계를 담고 있는 것이 '은물'이다.
프뢰벨은 아동이 은물을 가지고 놀면서 자연 발달의 보이지 않는 법칙성을 상징적,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이를 행동하고 체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은물의 최포단계로 등장하는 '공'은 은물체계의 출발점이자 모든 사물과 삶과 자연의 전체성에 대한 상징적 대변자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은물의 세가지 형식은 생활, 미, 인식의 차원으로 구분되는데, 공의 경우 주로 아동의 느낌과 감정에 상응하는 것으로 체계화되면, 정육면체는 사고와 지적능력에 상응되는 것으로 상징된다.
공을 이용한 활동은 존재, 소유, 생성에 대한 아이디어와 연결하거나 다면체로서 정육면체는 다양함을 대표하고, 다양함의 기초로서의 통일성이나 친숙함을 인간을 정육면체를 활용한 놀이를 통해 형성해 갈 수 있다.
두가지 은물은 대조적 특성을 지님과 동시에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놀이를 바탕으로 두 세계의 다양성 및 특징 연관성등을 지각해 가야 한다.
은물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현해 미적 정서와 느낌을 발현하고 발전시키는 측면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아이들은 은물을 활용한 활동을 통해 사물을 미적으로 묘사하고 관조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교육체계 역시 비판 받는 부분이 있다. 놀이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중요성을 정당화할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Braum & Edwards, 197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 체계는 아직까지도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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