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담/자유칼럼 37

솔직한 감정 토해내기가 정답은 아니야

솔직한 감정 토해내기가 정답은 아니야.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키고, 외롭게 하고, 괴로운 고민을 덜 하게 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할 시간을 덜 갖게 하지. 그 결과...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그 결과...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세상에 불신만 쌓아가게 되는 거야... 내가 너무 솔직하게 내 감정을 토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걸 알아차렸다면...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할 때는 감정 토해내기는 일단 쉬어봐... 덜 상처 받기 위해서 일단 쉬어봐... 나를 더 사랑하고 싶겠지.. 근데 이 때는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치료해주기도 해...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서 이해해야 되... 그러려면 노력해야 되...

디자인의 쾌적감과 죄책감

회의 일정이 있어서 구리에 들렀는데, 가는 길에 보니 천호역 버스 정류장도 구리의 버스 정류장도 새단장이 되어 있었다. 자동문과 새로운 알림 시스템, 냉난방 공기청정 가능한 휴게형 대기 공간, 깔끔한 외형과 승객 편의 서비스 제공등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이 많은 생활 편의를 위해서 또 쓰레기를 만들고 있구나.. 라는 반성을 해본다. 디자인은 생활편의는 환경 문제와는 독립적인 사건이라 치부하곤한다. 나도 이 사회도. 전문가들은 환경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회의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일회용 컵들을 써대고, 재생 에너지 및 대체에너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실험 수업에서는 플라스틱 교구나 테이프들을 마구 활용해 대겠지. 그리고 별도로 고민을 하고 별도의 해결책을 찾고 있겠지. 이 플라스틱은..

쪽팔리다의 표준어 정의 필요성

어마어마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서둘러 '쪽팔리다'를 표준어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평소 말씨가 비속어 투성이라는건 국격 보호를 위해서 은폐하고 볼 일이다. Suk Yeol's Critisism of US. 라고 외신 제목이 붙었는데, Seok Yeol 이라고 해도 되는데, Suk 이라고 쓰면서, 썩 유얼스 느낌이 되버렸어. 외신들도 무례하다. 뭔가 이름으로 장난치는 것 같아서... https://tv.kakao.com/v/432196587 난감하다. 내주식도 반토막에 반토막에...

아임 파인땡큐는 몇초?

I am fine thank you 를 말하려면 몇초가 필요한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환담자리에 대하여, 여측은 48초라 주장 야측은 통역빼면 24초, 양측 12초씩 발언했다 가정하면 12초 발언 주장. 결국, 오다가다 만나 인사한 것 가지고 환담이라고 하기 있기 없기 라는 상황임. 그렇다면 12초동안 I am fine thank you 는 몇 번 말할수 있을까? 쓸데없는 실험을 해보았다. 실헐결과 다섯번

답장주면 낚인거다[스팸]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으로부터 알 수 있는 나에 대한 그들이 가정한 정보는? 답장 하나 했을 뿐인데 대답해 버린 답들... 답장을 하면, 자식이 있는 사람인거고, 그 사람이 자식과 함께 있지 않다는거고, 자식이 엄마에게 반말을 하는 관계라는 뜻이고, 자식이 스스로 헨펀을 수리 맡길 정도의 나이라는 뜻이고, 난 여자라는 뜻이고, 자식을 걱정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여러 전제가 깔린 문자인데, 답장을 했다는 뜻은 위 정보가 참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다행히 나에게 위 문자는 참이 아니기 때문에 걸를수 있었지만, 답장을 해버린 후 스팸임을 깨닫는 부모도 있을거다. 혹시 모르니까, 스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대화를 나누는 부모도 있을거고 스팸 범죄 강하게 처벌했으면 좋겠다. 살다살다 나한테 이런 ..

거절의 바디랭귀지 영상 감상

상대적으로 좋은 인품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영상을 보며 배웠다. 거절의 예의 내 과거를 돌아 봤을 때, 난 기본적인 예의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래 링크는 거절의 바디랭귀지에 대한 영상이다. https://youtu.be/0mci7spBVHs

교실 사건 - 작도 시간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교실 싸움??? 싸울뻔 한 것은 싸운 것인가? 때릴 뻔 한 것은 때린 것인가? 놀림은 일어나버린 사건이고, 때림은 일어날 뻔 한 사건이라면, 누가 잘 못한 것인가? 놀림이 일어나게 만난 환경을 방치한 사건도 사건인가? 놀림이 놀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놀림과 장난의 경계는 어디인가?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이 모든 디테일한 이해는 정말 어렵다. 십여년 전 수업 중 일어난 사건을 적어보려 한다. 수업 하다 보면, 아이들간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이 싸움을 예방 할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초짜 선생인 나로써는 그러지 못했다. 부족한 기억을 적어보려 한다. 작도 수업이었고, 교실에 8명 정도 초등 저학년 수학 영재..

먹기위해 산다는 것

어릴 적 아버지가 물었었다. '살기 위해 먹을 테냐? 먹기 위해 살 테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아무 대답을 안 했을지도... 아버지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할 것 같으냐? 그렇지 않다. 먹기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아무거나 먹도록 내 삶을 방치해선 안 된다. 단지 살게 한다는 이유로 죄를 먹고, 추한 것을 먹어서는 안된다. 좋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먹기 위해서 산다'는 그런 의미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자존심과 존귀함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한참이 흘렀다. 같은 맥락으로 나도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너는... 목표 때문에 달리는 거니? 달리기 위해 목표를 정하는 거니? 어느 순간 드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