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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위한 지식의 기능 : 산다는 것과 안다는 것 (Die Rückseite des Spiegels)

카리스χάρης 2026. 4. 8. 08:42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비교행동학의 대가로, 그의 1973년 저서『거울의 뒷면(Die Rückseite des Spiegels)는 인류의 인지 능력을 생물학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야심 찬 저작이다.

이 저작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인간의 인지 능력은 진화적 기원을 갖는다.

로렌츠는 인간의 '인식(Erkenntnis)'이 하늘에서 떨어진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고 보았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식을 생존도구로써 발달시킨 것이다. 그는 이를 '자연스러운 흐름(Natural History)'로 보았으며, 인지 작용 자체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을 강조하였다.

 

2. 가교적 실재론 (Hypothetical Realism) : 거울의 뒷면(Die Rückseite des Spiegels)

그는 칸트의 철학을 생물학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칸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두가지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현상(Phänomen)으로 우리의 오감과 이성을 통해 파악된 모습,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물자체(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 Ding an sich)로 우리의 인식 능력과 상관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이다. 칸트는 인간이 현상은 알 수 있지만,사물 그 자체는 절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오로지 선천적 범주를 통해서만 세상을 본다는 입장이다.

로렌츠는 칸트의 '물자체(딩 언 지히)'와 우리 인식사이의 연결 고리를 생물학적 진화로 풀어내려 시도함으로써 칸트의 철학을 뒤집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인지 구조(범주)가 실제 세계와 일치하는 이유는, 그 구조가 실제 세계 속에서 생존하며 피드백을 통해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즉, "거울의 뒷면"은 우리 정신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의미하며, 이것이 실제 세계를 비추는 도구가된다.

보통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비치는 '이미지(현상)'을 본다. 하지만, 거울이 이미지를 비추기 위해서는 거울 유리 뒷면에 수은이나 은박장치등이 있어야 한다. 거울의 앞면은 칸트의 '현상'으로써 우리가 인식해야할 세상이 투영된 우리가 '인식한 세상'이다. 거울의 뒷면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생물학적 장치(인지구조, 신경계, 감각 기관)에 해당한다. 우리의 인지구조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그 거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거울의 뒷면)를 보지 못한 채 비친 모습만 보고 살아왔다. 

'거울의 뒷면'이라는 비유를 통해, 로렌츠는 칸트의 '선험적 범주(A priori, 아프리오리)'를 생물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칸트는 철학적 입장에서, 인지 구조의 성격을 '인간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고정된 틀'로 보았다. 반면 로렌츠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인지구조를 "수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적응 형식(adaptive form)'"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인지구조는 실재와 일치하나? 칸트는 알수 없다고 보았고, 로렌츠는 그렇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세계 속에서 생존하며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자체와의 관계의 측면에서 비교해 보아도,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물자체를 절대 알 수 없다라고 보았으며, 로렌츠는 우리의 인지구조가 물자체의 정보를 생존에 유리하게 편집한 것으로 본다. 

결국, 로렌츠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의 인지구조는 거울의 뒷면으로써 결코 완벽한 진리는 아니며, 단지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생속하기 위한 생물학적으로 최적화된 도구일 뿐이다. 즉, 우리가 사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것이 진리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응시킨 결과일 뿐이다. 

우리의 정신(거울)이 세상을 비추는 방식은, 그 거울을 만든 생물학적 메커니즘(뒷면)에 의해 결정되며, 이 메커니즘은 진화의 역사 그 자체이다.

 

로렌츠는 거울 은유를 통해,

우리는 '거울의 뒷면'인 우리의 생물학적 인지 장치가 어떻게 설계되었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을 해석할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화된 뇌가 허용하는 방식대로만 보고 있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는 것을 피력하고자 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거울이라는 물리적 토대' 즉, 우리의 생물학적 토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 인식의 근거를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고자 했다.

 

 

3. '풀미네이션(Fulmination)'과 창발

풀메네이션은 폭발이나 번개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로렌츠는 진화의 과정에서 전혀 다른 두 체계가 만나 갑자기 새로운 차원의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이 단어를 섰다. 

수소(H)와 산소(O)는 각각 가스 상태일 때 불을 붙이면 터지거나 타오르는 성질이 있지만, 이 둘이 특정 방식으로 결합해 물(H2O)가 되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액체 상태'와 '불을 끄는 성질'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이 나타난다.

인류의 정신이나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뇌세포가 많아지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는 순간, 번개가 치듯 새로운 차원의 인식 능력이 폭발하는 나타난다는 것이다. 

창발은 하위 계층(세포, 분자)에는 없는 특성이 상위 계층(생명, 정신)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한번 창발이 일어나 상위 차원으로 넘어가면, 하위 차원의 법칙만으로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진화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창발의 연속인 것이다. 

무기물이 생명으로 도약을 이루고, 단순반사였던 것이 중추 신경계나 학습으로의 도약을 이루고, 동물의 지능이 인간의 정신 문화로까지 도약하는 것이야말로 인식의 진화의 역사이다. 이것이 창발의 연속 현상이다. 

이 개념들이 '거울의 뒷면'에서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정신도 결국 생명 진화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며, 그러나 불연속성을 갖는 특징 때문에 풀미네이션을 통해 인간은 독자적인 법칙인 문화, 논리, 도덕을 형성하게 된다. 거울의 뒷면이라는 은유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상징하며, 이것 역시 어느날 갑자기 진화의 현상으로 발현된 새로운 시스템의 하나이다. 이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고등 정신 활동이 가능해졌다. 

 

 

4. 문화적 진화와 '인류의 자살'

로렌츠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문화적 진화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공격성 등)은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생기는 불균형을 경고한다. 창발적 도약을 통해 생겨난 인간의 문화가 이제는 생물학적 진화 속도를 앞질러 버렸기에 이러한 불균형이 발생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이 강력한 도구이나 정신을 어떻게 책임감 있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을 그는 현대 인류가 직면한 위기로 진단했다.

인간의 문화가 생물학적 진화가 만들어 놓은 적응 구조와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작은공동체에 맞게 진화했는데, 거대한 익명사회에 살고 있으며, 즉각적 보상에 민감하게 진화했는데 자본주의 소비시스템에 노출되었다. 공격성은 생존을 위해 있었는데 이제 고도로 발달된 무기는 파괴와 정복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문화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인류의 자살. 

이 표현은 다소 강한 표현이지만, 로렌츠가 인류의 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이다. 

기술발전은 오히려 파괴력을 증대 시켰고, 과도한 경쟁은 사회를 붕괴 시키고 있으며, 도덕 감각의 약화는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있으며, 환경파괴는 생존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 

문화는 진화의 성과인데, 이제 우리가 구성하는 문화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진화적 부조화에 대해서 알아채야 한다.

 

 

 

5. 전체론적 시각 (Holistic view)

생명 현상을 단순히 물리·화학적 법칙으로만 환원(Reductionism, 환원주의)하는 것에 반대한다. 즉, 복잡한 생명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분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론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이다.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자동차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다 분해해서 나사 하나, 톱니바퀴 등의 재질을 연구하는데 반해, 전체론적 시각에서는 부품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립'되어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달리는 기능'에 주목한다. 이 기능은 나사 하나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전체 시스템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특성이다.

우리의 생명은 체계로써 의미를 갖는다. 생명은 단순한 물질의 합이 아니며,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유기적 체계'이다. 우리의 인지 구조(거울의 뒷면) 역시 개별 신경 세포의 집합이 아니라, 그 세포들이 얽혀 만들어낸 거대한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각 부분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전체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우리가 특정 부분만 떼어내 연구하게 되면, 그 부분이 전체 시스템 안에서 수행하던 진짜 의미를 놓치게 된다. 

로렌츠는 인간의 지식, 감정, 도덕, 가치 판단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인지)과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거나 옳다고 느끼는 방식(가치)이 모두 하나의 진화적 체계안에서 통합되어 있다고 보았다. 예를들어, 우리가 어떤 질서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심미적 감각은, 사실 우리 뇌가 복잡한 환경에서 유용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발달시킨 인지적 장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론적 시각 때문에 로렌츠는 실험실에서의 단편적 실험보다, 자연 상태에서의 관찰을 중시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실험실에서 통제된 변수만 보는 것은 생명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는 직관적 통찰이 과학적 분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었다. 

 

로렌츠에게 전체론이란 생명의 층위를 무시하지 않는 태도이다. 원자나 분자의 법칙이 생명체에도 적용되지만, 생명체에는 그 이상의 생명만의 법칙이 있고, 인간에게는 다시 그 이상의 정신과 문화의 법칙이 층층이 쌓여 전체를 형성한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과 지식은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생물학적 해답을 덛지고 있으며, 로렌츠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수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정교한 '적응 장치'임을 역설하며, 현대 문명이 이 장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지식(knowledge)는 단순한 정보나 사실의 축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adaptation)하는데 기능하는지 철학적 심리학적 맥락에서 논의하였으며, 아는 것과 사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지식의 기능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1] Lorenz, K. (1973). Die Rückseite des Spiegels: Versuch einer Naturgeschichte menschlichen Erkennens. P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