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빈센티(Walter Vincenti)의 저서 『엔지니어들은 무엇을 알고 어떻게 아는가(What Engineers Know and How They Know It)』에 대해서 살펴보자.
빈센티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항공공학 교수였으며, 스스로도 공학도이자 공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공학적 지식이 다른 학문의 하위 부류가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는 지식임을 보이고자 했다.
1. 공학은 과학의 하위 부류가 아니다
과거에는 "과학이 이론을 발견하면 공학은 그것을 적용할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빈센티는 공학적 지식은 과학적 지식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무엇이 진실인가"를 탐구하지만, 공학은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라는 목적 지향적 지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2. 공학적 지식의 6가지 범주
빈센티는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지식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 기본 설계 개념 (Fundamental Design Concepts): 기계나 구조물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 (예: 비행기의 양력 발생 원리).
- 기준 및 규격 (Criteria and Specifications): 설계를 평가하고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수치나 목표.
- 이론적 도구 (Theoretical Tools): 수학적 모델이나 공식 등 설계를 돕는 지적 도구.
- 양적 데이터 (Quantitative Data):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얻은 수치 데이터 (예: 재료의 강도 테이블).
- 실천적 기법 (Practical Techniques): 도면 작성법, 계산 절차 등 현장에서 지식을 구현하는 방법.
- 설계 도구 (Design Instrumentalities): 풍동 실험 장치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같은 물리적/개념적 도구.
이 여섯가지는 (1) 기술적 서술적 지식( 사물이나 시스템에 관한 설명적 정보), (2) 규범적 지식(설계나 제작의 지침이나 규칙), (3)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 경험을 통해 몸에 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직관적 지식) 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빈센티는 Ryle의 knowing that과 knowing how를 접목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3. 지식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변이와 선택)
빈센티는 공학 지식이 발전하는 과정을 생물학적 진화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그는 엔지니어가 지식을 얻고 확장하는 방법에도 패턴이 있다고 보았다.
- 변이 (Variation): 엔지니어들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설계안이 제시 혹은 생성된다.
- 선택 (Selection): 실험, 계산, 혹은 실제 실패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설계안이 살아남고 지식으로 굳어진다.
이 모델은 과학적 실험 방식과는 다르며, 엔지니어링이 불확실성과 시행착오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4. 왜 이 책이 중요한가?
- 현장 중심의 사례 분석: 이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항공공학의 발전사(예: 날개 설계 문제, 비행 품질 설정, 제어 부피 분석, 프로펠러 설계 사례, 리벳 조인트 설계 등)를 매우 세밀하게 분석하여 설득력을 높였다.
- 실패의 가치: 빈센티는 엔지니어들이 '실패'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설계 기준을 수정해 나가는지를 강조했다.
| 날개 설계 문제에서는 이론적 과학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설계가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비행 품질설정에서는 파일럿의 경험과 주관적 의견을 정량적 규격으로 변환해야 하는 어려움이 나타난다. 제어부피 분석에서는 물리학적 이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엔지니어가 독자적인 분석 도구로 해결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프로펠러 설계 사례에서는 과학적 이론이 결여된 상황에서도 실험과 경험적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리벳조인트 설계에서는 생산 현장의 경험적 지식(tacit knowledge)이 설계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
- 엔지니어링 디자인은 일반적인 과학적인 방법과는 다른 인식적 과정이다. 과학적 일반화가 아니라 맥락적 판단과 기능적 해결이 중심이다.
- 엔지니어링 지식은 경험, 직관, 상황 판단, 실험에 의해 함께 형성된다. (도구를 사용할 때 새로운 의미 규칙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맥락적 의미론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과학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지식을 창조하고 검증하는 독자적인 지적 활동이다"라는 점을 역사적 사례로 증명한 명저로써, 공학도뿐만 아니라 기술의 본질이나 혁신의 과정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1] Vincenti, W. G. (1990). What engineers know and how they know it (Vol. 141).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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