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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식과 관심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 Habermas)

카리스χάρης 2026. 4. 9. 23:25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Knowledge and Human Interests)은 비판 이론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저작이다.

그는 실증주의가 지배하던 당시 학문 체계를 비판했는데, 일단 하버마스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앞서 실증주의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 논리 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

논리 실증주의는 나중에 하버마스나 쇤에게 차가운 도구적 이성이라며 비판받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구시대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각성이자 혁명이었다.

실증주의자들이 타파하려던 것은 바로 근거없는 형이상학(Metaphysics)과 독단적 권위였다. 

논리 실증주의가 등장하기 전, 철학은 "존재란 무엇인가?", "절대 정신이란 무엇인가?" 같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논쟁에 빠져 있었다. 비엔나 학파는 이를 '언어의 오용'이자 '지적 사기'라고 보았다.

실증주의는 증명할 수 없는 주관적 신념이나 종교적 도그마가 진리 노릇을 하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각성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는 선언은,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쌓아 올리자는 강력한 지적 정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엔나 학파의 모리츠 슐리크, 루돌프 카르납 등도 '검증 원리'를 내세우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학문의 영역에서 퇴출하려 했다. 사회과학과 교육학에서도 '숫자로 증명해라.', '객관적인 데이터만 가져와라.'는 식의 엄격한 정량적 방법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실증주의는 '원인(A)을 알면 결과(B)를 통제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공고히 했는데, 이것의 영향으로 행정, 경영, 교육 정책이 마치 기계를 수리하듯 '입력과 출력'의 효율성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전문가가 위에서 아래로 정답을 내려주는 구조가 당연시 되었다.

비엔나 학파에게 언어는 오직 '사실을 전달하는 정밀한 기호'여야 했으며, 은유, 상징, 예술적 표현 등은 학문적 소통에서 배제되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한다. 20세기 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며 인류의 지식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과학적 방법론이 종교나 낡은 철학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적 논리를 사회 전반에 적용하면 빈곤, 질병, 전쟁 같은 사회적 문제도 '공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엄청난 낙관론을 가져다 준다.

 

게다가 실증주의는 지식을 일부 현자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검증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권위 있는 사람이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대신, "데이터를 봐라, 당신도 똑같은 실험을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지식의 민주화를 얻었다는 기대를 불어 넣었다. 누구나 논리적 규칙만 지키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증명되지 않은 권위에 휘둘리지 말자"는 아주 멋진 각성에서 시작되었다. 무책임한 말들을 걷어내고, 단단하고 확실한 토대 위에 인류 문명을 재건하려 했던 것이다. 

 

 

>> 논리 실증주의의 공헌과 한계

논리 실증주의의 '기존 질서에 대한 각성' 및 장점 훗날의 '비판' (하버마스, 쇤 등)
명료함: 애매모호한 신비주의를 타파함 협소함: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무의미'로 치부함
객관성: 주관적 편견을 배제하려 함 경직성: 맥락과 상황(Swampy lowland)을 무시함
합리성: 논리적 근거 중심의 사회 지향 도구화: 인간을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전락시킴

 

하지만 하버마스가 보기에 이들이 만든 '단단한 토대'는 너무 차가웠다. "왜 이 지식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관심)을 던지는 것조차 '주관적'이라며 경시됐기 때문이다. 

검증 원리를 내세우고, 사회과학과 교육학 등에 대해서도 엄격한 정량적 방법,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하버마스에게 인간의 삶에 깃든 '의미'와 '가치'를 죽이는 행위였다. 언어를 도구나 정밀한 기호로만 간주하는 것은 적당치 않으며,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살아있는 매개체이자, 의사소통 행위임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비엔나 학파 (논리 실증주의) 하버마스 (비판 이론)
세상은 '객관적 사실'의 집합이다. 세상은 '사회적 관계'와 '의미'로 구성된다.
연구자는 '중립적 관찰자'여야 한다. 연구자는 상황에 '개입하고 반성'해야 한다.
지식의 목적은 '효율적 통제'다. 지식의 목적은 '인간의 해방'이다.

 

 

>> [책]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이제 그의 책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을 간단히 살펴보자.

당시 영향을 미치던 '논리 실증주의'와 그 뿌리가 된 '비엔나 학파(Vienna Circle)'의 사상을 하버마스는 매우 위험하고 편협한 것으로 보았었기에,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실증주의가 지배하던 당시 학문 체계를 비판하며, 인간의 인식이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간적 '관심(Interests)'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인 '지식 형성적 관심(Knowledge-constitutive interests)'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기술적 관심 (Technical Interest)

  • 학문 영역: 분석적-경험적 과학 (자연과학 등)
  • 목적: 환경에 대한 예측과 통제
  • 설명: 자연을 객관화하여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본다. 효율적인 수단-목적 관계를 통해 환경을 지배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2. 실천적 관심 (Practical Interest)

  • 학문 영역: 역사적-해석학적 과학 (인문학, 사회학 등)
  • 목적: 상호 주관적인 이해와 합의
  • 설명: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전통을 이해하고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상호 이해를 지향한다.

3. 해방적 관심 (Emancipatory Interest)

  • 학문 영역: 비판적 사회과학 (정신분석학, 이데올로기 비판 등)
  • 목적: 억압으로부터의 자기 반성(Self-reflection)과 자유
  • 설명: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나 왜곡된 소통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려는 관심이다. 허위의식을 깨닫고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자기 반성(Self-reflection)'은 단순히 "오늘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돌아보는 성찰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강력한 지적·정치적 투쟁에 가깝다.

그에게 반성은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지식 배후에 어떤 '관심'과 '권력'이 숨어있는지 폭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지식과 행위가 어떻게 하나로 묶이는지 탐구하였다. 

하버마스는 모든 지식이 인간의 생존과 욕구(관심)에서 태어났다고 본다. 내가 가진 지식이 단순히 대상을 '통제'하기 위한 것인지(기술적),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것인지(실천적)를 깨닫는 순간, 지식은 더 이상 죽은 정보가 아니게 된다.

"이 지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는 것(Knowledge)은 곧 그 지식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행위(Action)의 문제와 직결되게 된다.

하버마스는 반성의 모델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빌려왔다. 환자가 반성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나 억압된 욕망을 깨닫는 순간, 그 억압에서 풀려나 삶의 방식(행위)이 바뀌는 것과 같이, 우리도 나를 구속하던 사회적 관습이나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지식'으로서 객관화하여 바라본다. 그것이 왜곡임을 깨닫는(반성)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방식대로 살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 지점이 반성이 곧 해방적 행위가 되도록 한다. 

 

실증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이론가(아는 사람)'와 '기술자(행하는 사람)'가 나뉜다. 이론가는 법칙을 만들고, 기술자는 그것을 적용할 뿐이다. 하버마스는 우리가 자기 반성적 지식을 가졌다면, '실천적 지혜(Phronesis)'와 닮아 있는 상태에 이른다고 보았다. 반성은 단순히 이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지식을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이때 지식은 행위를 가이드하고, 행위는 다시 반성을 통해 지식을 정교화한다. 여기서 우리는 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쇤의 '행위 중 반성'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즉각적인 통합이라면, 하버마스의 반성은 삶의 궤적 전체를 바꾸는 근원적인 통합인 것이다.

 

결국 하버마스가 말한 통합이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 나는 이전과 똑같이 행동할 수 없다"는 실존적인 변화를 뜻한다. 

 

 

 

 

 

 


[1] Habermas, J. (2015).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John Wiley & Sons.

 

 

 


세상은 더이상 문제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정된 구조에 단순히 적응하고 그 구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본성을 관찰하여 우리의 꿈을 확인하며 공동의 꿈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이다. 

방향을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들 개개인의 철학은 하나의 벡터일 뿐이지만, 이 벡터는 또 다른 벡터를 공명하고 또 또 다른 동지를 만들며, 큰 흐름을 만들수도 있다. 이제 세상은 하나의 절대적 권력이 모든 벡터들에게 명령하는 세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 권력조차 하나의 벡터일 뿐이다. 건강하다면 그 힘을 끝까지 오래 유지시키며 거대하고도 영원한 흐름을 만들것이며, 건강하지 않다면 큰 흐름이었으나 짧게 요동치다 자멸하게 될 것이다. 

흐름 속에 있다. 우리는... 

흐름 속에서 무엇을 갖는것은 의미가 없다. 

어리로 향하는지만 의미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