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담/자유칼럼

수포자하면 덧나니?

카리스χάρης 2016. 1. 16. 23:15



http://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4072 

수포자는 중요한 문제가 된지 오래된것 같다.


한 개인에게 수학은 중요한가? 


꼭, 반드시, 그런것 같지는 않다.


1. 나는 수학 전공자들로부터 수학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는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동안 주변 수학자, 수학교육자, 그리고 내가 접하는 다양한 문헌들에서 수학은 필수다. 라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
미팅을 할 때도 함께 퍼즐 문제를 풀면서 놀고, 친구들과 산행을 가서도 여러가지 수학적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있고 그게 참 좋았었고 너무 재밌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지한 공부만 하는게 아니라 수학으로 농담을 주고 받고 노래도 만들고 춤도 추기도 한다. 세상과의 연결성을 발견하고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수학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신념은 더 강해진다.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수학에 대한 태도는 종교적 태도라 비슷한것 같아.' 말한적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무언가의 매력이나 위대함을 발견한 사람은 그 가치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심지어 대통령이 수학에 대한 정책을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도 이런 믿음들에 동의한다. 그러나 절대진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수학은 그냥 가치있는 많은 것들중 하나일 뿐이다.



2. 이제 한발 물러나서
수학을 하지 않는 내 주위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사회에 수학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3. 수학은 왜 배우는가? 

두가지 목적으로들 나뉜다. 수학은 교양으로써, 혹은 유용하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렇다.
솔직히 내가 수학을 전공으로 했기 때문일수 있지만 수학도 하나의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루어지는 수학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안든다.


음악시간에 배우는 교양 클래식이나, 미술시간에 배우는 작품을 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생활에 필요하거나 유용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은 아니며, 깊은 이해를 할 필요도 없다. 쇼팽의 음악을 수업시간에 배운다는 것은 그것의 음악적 구조를 이해하고 음악을 작곡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문제해결 중심, 사고력 중심 교육은 교양으로써의 수학의 특징을 가리는 측면도 없지 않다. 너무 어렵다. 

예를들어, 방정식의 풀이를 할수 있다면 기본적인 문제에서 교육과정의 목표가 마무리 되고 사고력 함양 교육은 다른차원의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수포자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수학의 기본개념때문에 생긴다고 보지 않는다. 


수학의 다양한 가치중 나는 특히 문화성을 강조하고 싶다. 

학교수학은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4. 수포자는 왜 생길까?

내가 생각하기에 수포자는 다음의 이유때문에 생긴다. 

다소 억지스러운 글이니 재미로 읽어주기 바란다.


1) 현행 교육과정의 문제들이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것 같다.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수학적 능력의 수준이 높다고 본다. 


학교수학에서 수학교육의 목적은 수학의 실용성과 함께 문제해결력이 강조되고 있다. 수학적 힘의 신장... 머 이런식이다. 

그런데 수학교육의 목적의 또다른측면...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문제해결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구나 쉽게 풀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인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인 상황이 정상이다.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에 따라 기를 수 있는 범위는 다양할 것이다. 


비고츠키의 근접 발달영역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어떤 사람은 약간의 노력으로 어떤 문제를 풀수 있고, 어떤 사람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풀수 있다.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시간을 많이 쓰는 학생의 경우 문제해결 중심의 수학교육은 꽤 부담일 것이다. 

마음은 급하고 할것은 많기때문에 풀이과정을 외우게 된다. 내가 본 학생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는 이유는 그것을 이해하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그 결과가 가져다 주는 기쁨이 그다지 가치 있지 않고, 그들이 당면한 다양한 현실 문제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싶은 이유도 있다. 

수포자를 선택한 학생은 어쩌면 지혜로운 선택일수 있다. 왜냐하면, 문제해결과 사고력만 묻는 시험뿐이라면, 질것이 뻔한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인 인지상정아닌가?




2) 수학이어서가 아니라 사고 자체를 안하려는 사람들


물론 이런 문제도 있다. 

수학이어서 포기한것이 아니라 사고 자체를 안하려다 보니 수학에서 요구하는 사고가 너무 귀찮은 경우... 


사고 자체를 해야 수학에도 사고를 할 텐데

사고 자체를 안하니 수학에서 사고를 하는게 귀찮은 일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생각 안하는 것을 권하고 있는 것 같다. 

순종, 행복, 화해라는 담론속에 파묻어 버린 것이 있는데

비판하고 냉철한 태도로 대립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서로 날을 세우는 이견이 있다면 묻어두고 대화하지 않는 분위기, 학생이 이견을 말하면 대화가 아니라 반항이라고 규정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일종의 

사회적 무기력의 상태에 빠지게 되지 않았을까? 


하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고하지 않는 일상을 사는 아이들이 수학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에 얼마나 열의를 가질수 있을까?



3) 비판을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


"낯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데, 내말은 아무도 안들어. "

유명한 야구코치가 했던 말인거 같다. 


소통부재는 무기력과 사고력 둔화를 가져온다. 


한 윤리 선생님이 그러셨다. '인의예지신'중에서 요즘 아이들에게 빠진것이 '의'라고... 

그러면서 그분은 '의'의 정신에는 어쩔수 없이 반항과 저항정신이 깔려있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들에게 반항과 저항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말이다. 

무디고 어설픈 틀린 생각을 가지고 반항을 하면 어른 입장에서 짜증이 날것이다. 그러나 설령 아이들의 생각이 어리석더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대화할 기회가 안주어진다면 그 상황에 생존하는 학생들은 기존 체계에 순응한 학생들이다. 혹은 기존체계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는 집단일 것이다. 

소통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열려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협화를 협화로 만들기위한 노력이다. 

듣기 좋은 말만 확인하는 대화, 한쪽의 생각만 전달되는 대화는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통이 단절되면, 소통을 포기한다. 

사고에 대한 비고츠키의 입장을 취해보겠다. 비고츠키의 입장에 의하면 사고는 사회적 소통으로 부터 발달한다. 우리의 지식은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소통을 포기하면,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사고가 실제 현실의 사고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이 틀렸다고 생각하던 내가 틀렸을거라고 생각하던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세상의 생각의 틀과 내 생각의 틀을 맞출수 없으니 맞추려 하지 않게 될것이다. 이것이 사고력 부재를 낳는다.




어쩌면 너무 멀리 갔을수 있다. 그러나 사고의 자유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지켜줄 수 있다. 

수포자의 문제는 수학이나 수학교육이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모두 참여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다음은 우리나라가 아시아 선진국 최악의 부패국가라는 글이다. 우리 어른들이 먼저 사회를 정의롭게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30715201507304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4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