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흔히
한국의 급진적 성장을 한국인의 교육열, 그리고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에 있었다고들 말한다.
누가 이런 믿음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외국에서 한국의 교육이 지금의 혁신을 이끈 주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교육을 이끈 사람들이 훈장을 받아 마땅하다.
전형적 탑-다운 방식의 사고 방식이다.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교육열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없었을까?
우리만 유독 뛰어났나?
우리 보다 더 높은 교육열을 가진 나라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보다 더 좋은 재정적 조건에 있었던 나라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에서도 우리의 성장을 강력한 정권과 리더쉽에 의한 결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 사회를 이끄는 모든 생명체들의 복잡한 역동성을 살피지 않은 해석에 불과하다.
우리의 공교육으로 돌아오면
학교 역시 국가 통치 시스템을 반영 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국가가 국민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학교에서도 규율과 통제, 심지어 거치 규율의 차원을 넘어서는 폭력도 흔히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공교육을 어둡고 암담한 수용소와 같은 생활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계처럼 주어진 학습량을 소화시켜야 하는
창의성과 인격을 거세하는 생활을 강요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학교가 한 인격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장소는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에서는
시와 노래, 문학, 예술, 철학이 살아 있는 삶을
학생들은
살아내곤 했다.
우리 학생들은, 혹은 국민들은,
자유를 위해,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혼란한 사회와 치열하게 싸웠으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며, 자기 반성과 함께
외국의 문화, 예술, 철학을 열심히 배우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독재의 시대를 살아내며
육체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꽉막힌 공교육 시스템에서도
자율적인 판단을 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은
정신의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우리는 한순간도 치열하게 싸우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은 것은
우리는 한 공동체라는 의식이다.
이것은 서로를 의지하고 지킬 힘이 되었고,
힘을 잃은 나라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배우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 싸움은
개인의 안녕을 넘어서는 내 가족과 내 조국을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살아있는 민도와
강력한 지도자, 지도자들,
모두가 모여서 만들어낸
역사이다.
현재, 한국의 혁신지수는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혁신지수 1위에
우리나라 공교육이 얼마나 기여했을까?
교육에 대한 국가의 투자와 학생들을 이끈 공교육이 정말 거대한 영향을 미쳤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업적에 백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때,
그 중 98가지는 특정하기 어려운 내용이고, 2는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그 2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이름 없는 수많은 영향력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에 살았기 때문에
그 혁신 지수에는
학교 교육도 포함하여, 수많은 우리 역사의 다양한 요소들이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공교육은 교육의 내용이나 실행된 그 제한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의 내용을 단순화하고 성취 목표를 단순화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역사적 사회적 생태계 속에서
당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훌륭한 교사들, 부모들, 이웃들의
다양한 자유 의지가 복잡하게 작용하여
학생에게 교육적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우리의 공교육은 교육 내용 자체로는 창의성에 기여한 바가 없으나,
우리 민족은 수많은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창의적 혁신에 영향을 미쳤을까?
1) 예술과 흥을 사랑한다. 호기심도 많고, 재주도 많다.
2) 식문화가 엄청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레시피대로만 먹는 사람이 없고, 새로운 거, 새로운 시도로 먹는 것을 매우 즐긴다.
3) 불평 불만을 말하는 것을 허용한다. (특히, 술먹고 한 실수는 다 봐준다(범죄 제외). 조선 왕조 때 기생 조차도 왕이 민생에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왕에게 불만을 말하는 편지를 쓸수 있는 사회적 허용이 있었다. )
4) 고생에 대한 내성이 높다.
5) 인내심과 책임감이 높다.
6) 똑똑하다.
7) 솔직하고 즉흥적이며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딴 마음 갖는 사람을 솔직하게 불만을 말하는 사람보다 싫어한다. 전투 민족이다.)
8)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는다.
9) 노력을 믿는다.
10) 공동체에 의지하고 공동체를 믿는다.
11) 위대한 한글의 영향으로 문맹이 사실상 없다. 산업화의 시대적 변화에 빠르게 적응 할 수 있는 저력이 되었다.
12) 국가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서 제조업 및 인터넷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13) 공교육의 내용은 획일적이었으나, 그렇기에 학생들은 공교육과 자신의 사적 교육 활동에 명확한 경계를 두었다. 결론적으로 창의성을 위한 에너지를 급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며 자율적으로 끌어냈다.
또 하나의 질문
우리의 전통 교육은 문제가 많았나?
예를들어 조선시대 서당의 교육은 낭독, 암기, 음미의 형식을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토론은 서당 밖의 상황에서 학생들끼리 이루어졌을 것이며, 책을 정확하게 읽고, 정확하게 음미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한 훈련을 했다. 이것은 주입식 암기 교육인가?
우리가 '전통적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시기적으로 언제부터 언제를 의미하는 것일까?
전통적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판하고자 하는 교사의 전형은 무엇이며, 우리는 과연 그들 교사집단을 오해나 편견없이 이해하고 있는가?
단순히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단 이유로 교사나 윗세대 교육에 헌신하신 어른들에게 함부로 모욕을 주는 것은 아닌가?
불만의 대상이 우리는 과연 명확한가?
새로운 이론과 방향을 제안하기 위해, 기존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는가?
단순히 한명의 교사로써 내가 지향하는 교사상과 교육에 대해서 조심스럽에 제안하면 안되는가?
[1] 한국의 혁신지수와 저력 https://youtu.be/9LcKjC8fXoA?si=lCDcCQC0M9KJ-SzR
[2] 니나 시몬 노래 - 나는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학벌도 없고, 명예도 없지만, 하지만 아무튼 나는 가진게 많아. 나는 내 입술, 내 머리, 내 피를 가졌어. 나의 미소, 나의 신, 내 자유, 내 정신의 자유를 가졌어.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는 것들이야. https://youtu.be/DtJzr1Wcy_s?si=L2iBXi64wJ4nC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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